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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스스로를 알아가기 시작한 날

나눔으로 2025. 12. 12. 19:31

예린이의 일기

초등학교 1학년, 스스로를 알아가기 시작한 날

오늘은 아침부터 마음이 조금 조용했다. 특별히 기쁘거나 슬픈 일은 없었지만, 어제보다 생각이 많아진 느낌이었다. 학교에 가기 전, 신발을 신으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잠깐 바라보았다. 아직은 어린 얼굴이지만, 그 안에 여러 생각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나는 점점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학교에 도착하자 선생님은 오늘 하루를 조금 다르게 시작해 보자고 하셨다. 책을 바로 펴지 않고, 먼저 어제 하루를 떠올려 보게 하셨다. “어제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았나요?”라는 질문에 교실은 잠시 조용해졌다. 친구들은 하나둘씩 손을 들고 이야기했다. 재미있던 놀이, 맛있던 급식, 혼났던 일까지 다양했다. 나는 손을 들지 않았지만 마음속에서는 여러 장면이 떠올랐다. 어제 배웠던 피부 이야기, 친구의 괜찮다는 말, 그리고 내가 도와주고 싶었던 순간들.

첫 수업은 도덕 시간이었다. 오늘의 주제는 ‘배려’였다. 선생님은 배려는 큰 행동이 아니라, 작은 선택에서 시작된다고 하셨다. 줄을 설 때, 말을 할 때, 기다려 줄 때처럼 아주 평범한 순간 속에 배려가 숨어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내가 느끼는 마음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수업 중에 짧은 역할극을 했다. 한 친구가 무거운 가방을 들고 힘들어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 친구 옆에 다가가 가방을 같이 들어 주는 역할을 맡았다. 연기였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진짜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짐을 나눠 든다는 건 단순히 무게를 줄여 주는 게 아니라,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쉬는 시간에는 혼자 앉아 있는 친구가 눈에 들어왔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나는 조용히 옆에 앉아 “같이 놀래?”라고 물었다. 친구는 잠깐 놀란 얼굴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큰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 침묵마저 어색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알았다. 말이 많지 않아도 마음은 이어질 수 있다는 걸.

과학 시간에는 사람의 몸을 보호하는 여러 방법에 대해 배웠다. 손 씻기, 햇빛 차단, 상처 관리 같은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선생님은 특히 피부는 평생 함께 가야 하는 친구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마음속으로 오래 기억해 두고 싶다고 생각했다. 피부는 눈에 가장 잘 보이는 부분이지만, 그래서 더 조심히 다뤄야 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점심시간에는 급식실에서 작은 일이 있었다. 친구가 실수로 국을 조금 흘렸다. 주변에서 웃는 소리가 났고, 그 친구의 얼굴은 빨개졌다. 나는 얼른 휴지를 건네주며 괜찮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작게 “고마워”라고 했다.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도 오래 남았다. 누군가의 부끄러운 순간을 덜어 주는 것도 배려라는 걸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오후 수업은 글쓰기였다. 오늘은 ‘미래의 나에게 편지 쓰기’였다. 나는 연필을 들고 한참을 생각했다.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분명 지금보다 훨씬 많이 알고, 더 많은 책임을 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적었다. “지금도 힘들 때가 있지만, 그때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람을 아끼는 마음을 잊지 말아 주세요.” 글을 쓰고 나니 마음이 조금 단단해졌다.

하교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오늘 하루를 천천히 정리해 보았다. 오늘은 크게 웃을 일도, 크게 울 일도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가득 찬 느낌이었다. 작은 배려, 조용한 선택, 누군가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하루를 채우고 있었다.

집에 와서 숙제를 마친 뒤, 책상에 앉아 오늘 배운 것들을 떠올렸다. 배려는 연습이라는 것, 몸을 아끼는 것이 곧 나를 아끼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마음은 전해질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시험 문제로 나오지는 않겠지만, 어른이 되기 위한 중요한 공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나는 다시 거울을 보았다.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자라 있었다. 키가 커진 건 아니지만, 마음이 한 칸 더 넓어진 것 같았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될 것이다. 그때쯤 나는 더 많은 공부를 하며 사람의 몸과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는 피부과 의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아픈 피부를 가진 사람 앞에서, 오늘 내가 건넸던 “괜찮아”라는 말처럼 따뜻하게 말해 주고 싶다. 치료는 약과 기계로 하지만, 용기는 말과 태도로 전해진다는 걸 오늘의 예린이는 이미 조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교훈은 분명하다. 좋은 어른은 갑자기 되는 게 아니라, 이런 평범한 하루들을 성실하게 살아낸 아이가 자라서 되는 것이다. 예린이는 오늘도 조용히, 하지만 확실하게 그 길 위를 걷고 있다.